양준일과 마이클 잭슨 -3-: 가수 vs 아티스트
양준일과 마이클 잭슨 3편,
"그 (그들) 를 어떻게 부르나"
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마이클 잭슨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를 '가수' 나 '댄스가수' 라고 부르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었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었다. 어떻게 부르건 대중의 자유이고, 그 것을 불편해하는 것은 나의 자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권리는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는 내 공간이니까,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좀 풀어보고자 한다.
물론 내 기준에서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여기는 내 공간이고 내 생각을 써내려가는 곳이기 때문에. 악플을 허용하지는 않겠다.
'가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그 노래의 범위가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에만 한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몸짓, 의상, 무대, 조명,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어떤 '무대'를 이루는 데 있어서 모두 다 큰 요소이기 때문에, 가수라고 해서 그런 것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과연 그런 것을 모두 다 performer (공연자) 혼자서 디자인하고 준비하고 영향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가수'는 그런 것보다는 노래 자체에 치중하고 거기에 더 무게를 싣는 사람이고, 댄스가수는 거기에 댄스를 얹는 것이다.
가수에 작사/작곡을 얹으면 '싱어송라이터' 가 된다.
물론 이런 사람들 모두 다 당연히 '아티스트'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는 나 또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모든 아티스트가 '가수'냐라고 묻는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아티스트"는 더 큰 범주의 카테고리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양준일과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How to design
How to express
How to tell a story
How to care of fans.
내가 양준일을 보는 관점은 결코 '가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그냥 노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슈가맨 양준일 특집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내가 '컴투게더'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양준일은 전체를 보면서도 디테일을 본다.
이건 요즘 아이돌 시스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상대적으로 개성보다는 관심, 인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느낌을 언제부터 받기 시작했냐,
여기였다. 이 팔찌 (?). 이게 과연 양준일 본인이 선택한 악세서리인지 아니면 코디가 정해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메라웤이 몇 번 저기에 갔던 걸 보면 의도된건지도 모르겠다만, 후에 방송된 모습을 보면 본인 의사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아무튼, 이걸 보면서 흠칫 했는데,
후에 이 팬미팅 무대와 슈가맨 특집을 보면서 어느 정도 내 직감이 맞았음을 알게 된다. 물론 온전히 혼자서 낸 아이디어는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씬은 그가 "시간 여행자" 라는 컨셉을 잘 보여주는 씬이다. 아마, 팬미팅 자체가 그런 분위기인 탓도 있겠지만, 90년대의 양준일과 최대한으로 비슷한 옷과 코디는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며, 그가 이 공연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대중으로 하여금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큐 사인과 함께 "절묘한 타이밍으로" 조명이 바뀐다. 이 장면을 보신 분이라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그의 손짓과 조명이 바뀌는 타이밍이 정말 기가 막힌다는 것을--알아차리실 수 있으리라. 이 처음 인트로에서 나는 정말이지 쇼크를 어마어마하게 받았다. 단순히 모니터 너머의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몇 초 동안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느낌, 이 무대, 이 연출, 이 타이밍. K-POP씬은 물론, 나아가 현대의 그 어떤 해외 유명 스타의 무대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물론 이 씬을 연출 자체로만 따지자면, 솔직히 그렇게 어려운 연출은 아니다. 그러나 의미가 있다. 그가 이 무대를 얼마나 세심하게, '팬을 생각하며' 준비했는지를 초장부터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서부터 감동받은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현장에서 보신 분들은 오죽했겠나. 그저 부러울 따름....
왜 내가 이 조명을 이야기하느냐면,
이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명을 컨트롤하여 무대를 꾸려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섬세한 작업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연출에 맡겨버릴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까지 신경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데, 바로 아래의 장면이다.
생각도 못했다고 해야될까. 물론 무대 뒤에서 등장하는 연출은 지금와서는 딱히 신선한 것도 아니고, 드문 일도 아니긴 하다. 그런데 양준일이 하는 것이 뭔가 모르게 '약간은' 다른 느낌이 든다. 이유가 뭘까. 그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정성'이다. 이 장면에서는 주목해야 될 점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1. 과연 이 인간이 (비하가 아닌 경외의 표현으로 '인간'이라고 해 보고 싶었다) 정말로 30년동안 무대를 떠나있던 인간이 맞는 건가...
내 기억으로는 이 무대 뒤에서 등장하는 연출은 본인이 제안했던 것이다. 심지어 걸어나오는 모습이 어마어마하게 energetic하다. 시선, 걸음거리, 손짓, 거기에 더해 손을 잡아주는 서비스까지. 무대 매너가 완벽하다못해 차고 넘친다. 자세히 보면 뒤에 경호원(?) 이 잔뜩 긴장한 채 따라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사실 이게 30년만의 컴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선뜻 실행하기가 어려운 아이디어다. 분명 무대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무대가 얼마나 자주 있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서 혹시라도 극성팬 때문에 다치거나 하면 골치아파지는데, 그런 면을 생각하여 주저하기는 커녕 양준일은 정면돌파를 강행한다. 거기에는 이미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숙한 본인의 팬들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하고야 마는, 밀 때는 미는 그였다. 팬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팬을 놀래켜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으리라.
정말 따뜻하면서도 멋진 사람이다.
2. 저 옷은 도대체....? 양준일의 팬이라면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이거다. 1992년의 저 의상은 '황금코트' 라고 종종 불리는 모양인데, 양준일이 이 무대를 준비하면서 했던 말이 있다. 바로,,,
자,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팬들이 이 코트를 보고 92년의 본인을 떠올려주길 바란다는 말. 이 옷을 입는게 예전에는 본인을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팬들을 위해서라는 말. 여기서 이 사람이 본인의 팬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마이클도 이런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THIS IS IT' 투어를 준비하면서 했던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곡에서 했던 말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팬들은 언제나 앨범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듣고 싶어해요"
밴드도 변했고, 사운드도 많이 진보된 이 세상 이 시대에서, 그럼에도 올드팬들의 감성과 소망을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이라니. 나는 그 영상을 보고 참 많이 울었다. 그래, 나도 듣고 싶었으니까. 암표를 못 구하면 새 앨범으로라도.
양준일도, 팬으로 하여금 본인의 예전의 모습을 추억하며 즐겨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 예전의, 92년의 양준일이 같은 옷을 입고 2019년에 나타나 팬을 만난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의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가 가진 생각이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이클 잭슨도 무대 전체를 직접 디자인하고, 또 그 공간을 사용하는 것에 능숙하다. 양준일이 팬미팅 때 보여준 것은 분명 그가 가진 영감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나는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무대에서 그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았다.
마이클 잭슨을 그냥 일개 "가수" 라고 부르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가수라고 부르기엔 그의 업적과 재능, 그릇이 너무 크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그를 일컬어 "아티스트, 예술가" 라고 부른다. 그의 무대가 때론 뮤지컬, 때론 영화, 때론 댄서같은 여러가지 색을 지님을 상기해 본다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는지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양준일도 그렇다. 그의 예전 영상들을 보라. 이양반이 도대체 발라드 가수인지 댄스 가수인지 뭔지 헷갈릴만한 스펙트럼의 무대와 곡들이 많지 않나. 그가 커버한 "J에게"를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올 거다.
자, 이쯤 이야기했으면 이제는 결론을 내릴 때다.
그렇기에 나는 양준일을 "가수" 보다는 "아티스트" 로 정의하고, 부르고 싶다.
양준일의 오랜 팬덤은 내가 양준일을 마이클과 비교하는 것을 불쾌해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일부러 그리 쓴 "양준일과 마이클 잭슨" 특집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가 더 뛰어나다가 아니라, 둘이 지닌 "아티스트로서의 닮은 점" 이다. 그렇기에 누가 더 잘났느냐 식의 비교는 사양한다. 나는 둘 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팬이다. 팬심은 주관적이지만 평가는 객관적인 것이다. 양준일이 마이클보다 뛰어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즉, 그가 또 다시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게 둬서는 안 된다. 이미 한 번 겪었고, 그걸로 충분하다. 절대로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
그렇기에 (나를 포함한) 양준일의 팬덤은 양준일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그가 지닌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다 펼칠 수 있도록. 다시는 양준일, 그를 외면하지도, 홀로 두어서도 안 된다. 그가 현역으로 존재하는 한, 분명 K-POP씬은 한 단계 위로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이클 잭슨 이후로, 이런 사람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내게는 양준일이 단연코 유일하다.
아, 여담인데. 두 양반 다 옷에 특출난 센스를 보이는 건 둘 다 옷걸이가 무진장 좋기 때문이다. 마이클도 실제 키는 175~178 (피크때 178 추정, 사망 후 부검 당시 175) 정도였고, 키에 비해 흑인 특유의 긴 다리와 넓은 어깨, 작은 머리, 그리고 커다란 손이 그의 스타일을 완성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는데, 지금 보니 양준일도 비슷한 키 (178) 에 작은 머리, 넓은 어깨, 긴 다리가 그의 스타일을 더욱 더 빛나게 하는 것 같다.
다음번에는 기회가 되면 그들의 '다양한 모습' 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해 볼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