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사넷 (phdkim.net) 에 대해서: 무엇이 먼저냐
근 몇년간 한국 학계에서의 뜨거웠던 이슈들 중 하나로 김박사넷의 출현을 들 수 있겠다.
김박사넷
대학원의 모든 것, 김박사넷
phdkim.net
이 웹페이지는 한국의 주요 대학들 (대학원이 '활발한', 그리고 타대에서 오는 지원자가 '많은') 의 연구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데이터베이스인데, 그 동안 자대생이어야만 접근이 용이했던 연구실에 대한 정보를 보다 객관화시켜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페이지가 활발히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난리가 났다. 교수의 절대 권력이 침해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원 생태계에서 그 누구도 교수-학생의 권력관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고, 불만을 말하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이 시스템은 익명성으로 (물론 부작용도 있지만) 그간 할 수 없었던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악용될 수 있음은 누구나 안다. 또한, 병신같은 멍청한 대학원생이 그냥 지가 멍청해서 못한걸 가지고 교수 욕을 온동네 싸지르고 다니는 경우도 있는 것도 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게, 진짜로 좋은 교수와 랩이라면 알아서 자대생들이 채우게 되어있다. 저런 헛소문에 휘둘릴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 두번의 모집기간 정도에 약간의 감소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좋은 랩이라면 알아서들 오게 되어 있다. 한 번의 모집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냐고 묻는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인간의 인권이다.
내 페이스북에는 해외의 유명한 연구소의 그룹리더이신 한국인 박사님들이나, 혹은 국내/해외의 대학의 교수님들이 종종 계신다. 그 분들은 주로 김박사넷의 옹호론자이신 경우가 많은데, 내가 김박사넷을 적대시하는 사람과는 친구를 맺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꾸준히, 그 분들이 쓰시는 김박사넷에 대한 글에, 그 분들의 지인들이 아주 꾸준히 다는 댓글들이 있다.
'이건 교수들의 인권침해인 것 같아요'
참.....
교수들이 대학원생의 인권을 침해해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현상만 보는 담론을 이끌어 나가려 하는 게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저 말의 숨은 속뜻은 "우리도 솔직히 이게 문제인 건 아는데, 계속 이렇게 하게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라는 거지 뭐.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건 정치인들이 말 돌릴때 하는 소리고, 지금 당장 면피를 위한 말이다.
썩을 대로 썩고 고인 물은, 급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바뀔 수 있다. 점진적인 변화는 한국인의 민족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결국 관료/기성세대의 힘을 공고히 해 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교수가 학생을 평가하듯이, 학생도 교수를 평가하는 게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초창기라 불협화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기득권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책임도 기득권이 져야 하는 게 맞다. 그것이 권력을 쥔 자의 최소한의 도리요 양심이다.
김박사넷은 한국 학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